지구 어딘가의 불편한 진실, [디스트릭트9]

디스트릭트9 (District 9, 2009)

감독: 닐 블롬캠프
출연: 샬토 코플리(비커스), 바네사 헤이우드(타냐), 데이빗 제임스(쿠버스)

'피터 잭슨의 극비 프로젝트' '외계인 관람 금지'라는 포스터와 카피 외에 사전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디스트릭트9 시사회를 갔다.
근데 더도 덜도 말고, 내가 알고 있던 딱 저만큼의 사전 정보로도 '보고 싶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 않을까.

영화는 '28년 전 남아공 상공에 불시착한 우주선에 타고 있던 외계인들이 지구에 체류한다'는 가상의 설정에서 시작하는데, 가상이라고는 하지만 다큐멘터리 방식과 흡사한 구성 덕분인지 금세 이런 설정에 쏙 빠져들어가게 된다. 이야기의 주요 인물들 외에 외계인과 관련된 상황의 전문 지식인들이 인터뷰하는 방식이 영화 속 가상 상황과 극장 안 관객의 실제 상황 사이의 간극을 매우 빠르게 메꿔준다. 덕분에 나는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영화 속 상황이 가짜니 진짜니 하는 판단 자체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냥 영화 속 이야기에 쑥 빠져들었다.

여긴 외계인 전용 구역이야. 인간은 가라-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외계인 수용구역 '디스트릭트9'에 상주하는데, 이곳이 점차 무법지대로 변질되자 외계인 관리국 MNU는 디스트릭트9을 강제 철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여기 싸인해. 오케이?


사실 나는 SF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싫어해서 아예 보지 않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 SF적 요소가 들어간 것이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SF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밝히는 이유는 이 영화를 보기 전 궁금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계인이나 SF물을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까지 이 영화가 빨아들일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Yes'다.

디스트릭트9은 '이것은 SF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SF였다.
SF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비현실적인 부분 때문인데, 종종 어떤 SF에서는 설정 뿐만 아니라 그저 눈요기만을 위하거나 현실 도피적인 성향이 나타나 나는 그런 것이 불편했다. 내가 디디고 선 땅과 너무도 다른 느낌.

그런데 디스트릭트9은 보는 내내 자꾸만 지구 어딘가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느낌, 기시감이 들었다.

강제 철거를 진행하기 위해 외계인들에게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비커스를 포함한 외계인 관리국 MNU 사람들과 외계인 간의 장면들이 꽤 흥미로웠는데, 비커스도 그렇고, 용병도 그렇고 모두들 외계인에 대한 태도는 경멸, 비하, 무시 그 이하일 뿐이다. 근데 만약 실제로 이런 외계인들이 있다면 나는 저렇게 대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 못하겠더라. 비커스나 용병들의 외계인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이 외계인이건 그냥 인간이건간에 옳지 못한 것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실제로 고양이 통조림에 환장하고 지능이 왠지 낮아보이는 저런 외계인들이 있다면 비커스나 용병들처럼 하지 않을 거라는 단언을 못할 것 같다. 인간의 진짜 본성이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포인트는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이거 왜 이래? 우린 인간 아닌 것들의 권리도 보호한다규-
(잘 보면 마치 인간의 손이 외계인 손을 수갑채운 것 같은...... 착각인가-_-a)


그저께 MBC에서 재방송하는 다큐 '난지도 락'을 보았는데, 영화 속 외계인 수용구역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아니 현실 속 난지도(불과 몇 년 전의)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난지도 락'을 끝까지 보지 못했는데, 나는 그 다큐를 보면서도 계속 의문이 들었다. 한국의 치부이자 서울의 치부였던 쓰레기 섬 난지도에 살던 사람들, 결코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살았던 그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난지도, 용산, 남아공. 많은 것들이 뇌리를 스쳐가며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외계인이 많다고.


평점 ★★★★☆

재관람 의향 충분히 있으며, 재관람을 해야만 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내 생각보다 더 정치적인지도 모른다.(내가 몰라서 그렇지)

그리고, 디스트릭트10을 기다린다.

렛츠리뷰

by 조제 | 2009/10/07 20:52 | 영화보다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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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벽돌 쌓는 사람 at 2009/10/20 16:52

제목 : 디스트릭트 9, SF의 탈을 쓴 화끈한 풍자극
디스트릭트 9 감독 닐 브롬캠프 (2009 / 미국) 출연 샬토 코플리, 윌리엄 앨런 영, 로버트 홉스, 케네스 코시 상세보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초대형 우주선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우주선은 그 자리에 한참을 멈춰선다. 그들의 출현 배경을 궁금해하던 지구인들은 결국 우주선 안으로 진입하기로 결정하고, 그리고 진입한 우주선 속에서 몹시 굶주려 있는 수많은 외계인들을 발견한다. 이에 지구인들은 외계인들을 구출하기로 결정하고, ......more

Commented by paranpen at 2009/10/07 21:56
잘 읽고 갑니다. 제목이 너무 잘 뽑혔네요~
Commented by 조제 at 2009/10/09 00:08
핫,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Tag at 2009/10/09 07:50
마지막에 난지도 락과의 연계를 생각하니 정말 불편하네요.
인간이란 건 왜 이리도 지들이 우너하는 대로만 생각하는 건지...
Commented by 조제 at 2009/10/10 00:27
사실 난지도 락은 영화 본 이후에 보게 되어서, 영화 볼 때는 용산 일이 많이 생각났고...
굳이 구체적인 어떤 사건이 아니더라도 상황과 상황들이 현실 속에서 자주 일어났던 비윤리적인 일들이 많았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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